[중도中道는 8_정도 뿐이다]

들어가는 글
 
그러면서 8정도는 [실천중도]라 하고,
<301경>의 [유무중도]는 실천중도를 뒷받침하는 [이해중도]라합니다//효진
[고락중도]를 보면 중도는 고도 아니고 낙도 아니다 라고 하지요?.. 그러니
[유무중도]는 중도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라고 설명하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효진

효진님은 경에대한 독특한 해석도 유별나지만
새로운 어휘도 저(수가) 만큼이나 잘 지어내시는 분입니다.
 
논쟁의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가운데.
[중도]에 대한 의견충돌이 또 일어났습니다.
 
요즈음 저도, 대화에 간간히 참여하고는 있지만,
실시간으로는 응대하고 있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요즈음의 저의 글들은
실론섬님과 효진님 사이에 급격한 온도 상승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본론
 

이미 실론섬님께서
니까야의 '깟짜야나 고따 숫따' 와 아함경의 가전연경 전체를
게시판에 올려 놓으신 상태라,
문제가 되는 일부만을 이곳에 옮겨 왔습니다.
 
<니까야 깟짜나곳따 경S12:15>

 
6.  "깟짜야나여,
'모든 것은 있다.'는 이것이 하나의 극단이고
'모든 것은 없다.'는 이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야나여,
이러한 양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중간[中]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
 
(깟짜야나여, 여래는 그 어느 극단에도 접근하지 않고서
중도(中道)에 의해서 너에게 다르마를 가르친다.)<=====실론섬님의 재再_해석????
 

<잡 301 가전연경>
 
5. 왜냐 하면 세간의 발생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본다면
세간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세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면
세간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7. 이것을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所以者何。世間集如實正知見。若世間無者不有。
世間滅如實正知見。若世間有者無有。
是名離於二邊說於中道。
 
 
가전연경에서 중도中道라고 옮겨진
산스크리트 단어가 원래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초전법륜경에 나오는 중도中道의 팔리어는 'majjhimā patipadā'이고
'깟짜나곳따 경'의 'majjhena'와는 다른 단어이므로
너무나도 당연히, 초불연에서는 그냥 중中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8_정도는 성자들의 길이며 성자들의 청정범행이기도 합니다.
고따마 부처님의 성자이시므로
그 분의 일거수일투족은 8_정도라는 중도위에서 행해지는
청정범행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에 나오는,
'중간[中]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라는 말씀은
'8_정도라는 중도中道에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따마 부처님은 8_정도의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멀리하라'라는 중도위에서
바른_말, 즉 정어正語라는
청정범행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8_정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금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웃 종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8_정도는 '미워하지 말라(악의 없음, 해치지 않음)'입니다.
즉 8정도 분석경(S45:8)은 10_악업에 대한 '하지 말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청정범행의 디딤돌로써,
8_정도라는 중도中道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끝맺음
 
저는 아함경의 전체내용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8_정도 이외의 다른 중도가 있는 듯이 한자어로 표기된,
가전연경의 중도中道는 잘못 옮겨진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고락중도], [유무중도], [실천중도], [이해중도] 등의
뭔가 심오한 다른 가르침이 있는 듯 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러한 말들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도中道는 8_정도뿐입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중도中道위에서 행해지는
청정범행이 되는 날까지 정진해야 합니다.(끝)

(20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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