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진식式 인식론에 대한 반론]


본론_2 : 불교 인식론
('불교는 인식론이다'라는 효진식式_인식론에 대한 반론)
 
그럼 우리가 외부에 그런 모습으로 있다고 알고있는 일체는 무엇인가?..
2법인 12처.. 12처라고 이름 하지만
아직 모양이 생기지 않은..의
3사화합 작용으로 비로서 생겨난다는 거죠.//효진
 
그러기에 2법인 12처에 의해
3사화합을 일으키는 18계가 생기며,
18계에 의해 5온으로 알려지는 색수상행식이
존재로 집기하게 된다는 겁니다.//효진
 
-> 수가님이 언급한 [6내외입]은 3사화 합을 통해
이미 존재화가 된 것입니다. //효진
 
'불교는 보다 진보된 인식론이다.'라는 효진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효진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존재론적 시각을 지니고 있음을
본인이 알고는 계시는지요?
 
'책상_고苦'라는 사자후를 토할 때부터
효진님은 존재라는 단어는 물론,
'모든 존재들'이라는 뜻의 '일체'라는 어휘를
초지일관 끊임없이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효진님께서 사용하시는 '일체'라는 어휘는,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意]와 [마노의 대상인] 법
ㅡ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일체 경 S35:23)
라는 경의 '일체'와는 다르다는 것을
본인도 이미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일체란 곧 세계로 12처 또는 18계 또는 5온에 의해 드러나는 것(=생기는 것)이다.//효진
즉 효진님은 '일체'를 존재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존재론과 인식론의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일체'라는 단어를
'인식되는 모든 존재들'의 의미로 사용하시는
효진님의 글을 볼 때마다,
저는 효진님이야말로 존재론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고따마 부처님의 인식론을
하나의 시각_대상(꽃)을 예로 들어서
펼쳐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고따마 부처님께서는
외부의 대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6_외입에 들어오는가? 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경에 남기시지는 않았지만,
일단, 6_외입에 들어온 모든 시각_대상은
 
색_색
색-수
색-상
색-행
색-식
 
의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책상이든 꽃이든....무엇이든 간에,
6_외입의 내용은
5온으로 만들어진 색_명색이라는 것입니다.
 
마침, 그 꽃이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꽃이었다면,
 
향_색
향-수
향-상
향-행
향-식
 
또한,
만들어져서 6_외입에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6_외입의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꽃을 보고 있는 사람,
즉 눈이라는 감각기관의 소유자가
그 대상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진,
 
안_색
안_수
안_상
안_행
안_식
 
이라는
(안이비설신의, 여섯가지 6_내입의 하나이면서, 시각_대상을 담당하는)
안_명색이 색_명색과 접촉하게 됩니다.
 
접촉과 동시에 안_명색과  색_명색 사이에 반응이 시작됩니다.
 
색_색은 안_색과
색-수는 안_수와
색-상은 안_상과
색-행은 안_행과
색-식은 안_식과
 
각각 반응합니다.
 
저는 이 반응이 바로 식識이라고,
[Re:문제의 핵심은?..부처님께서는 그것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라는 글에서
이미 말씀 드린 바가 있습니다.
 
이 경우, 식識은 안식識이라고 불릴 것이며,
꽃의 향기까지도 인식하는 경우라면
비식識도 함께 일어날 것입니다.
 
만약 꽃을 만저보기라도 했다면
당연히 신식識까지도 일어났을 테지요.
이렇듯 사람의 인식과정은
안이비설신의로써 매우 입체적입니다.
 
그런데
반응의 내용, 즉 안식識 구체적인 내용들로는,
 
아! 내가 보는 대상의 모양(색色)은 이렇구나!
아! 내가 보는 대상의 느낌(수受)은 이렇구나!
아! 내가 보는 대상의 분위기(상想)는 이렇구나!
아! 내가 보는 대상의 의도(사思)는 이렇구나!아!
내가 보는 대상의 지혜/지식(식識)는 이렇구나!
 
라는 인식작용들이
전광석화와 같은 빠른 속도로 진행/반복됩니다.
이것을 아비담마에서는 속행(이어지는 작용들)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제가 이해하고 있는
고따마 부처님의 인식론입니다.
 
효진님께서 줄기차게 말씀하시는
3사화합으로 '드러나는 것(=생기는 것)', 즉 '일체 존재'란
제가 아는 고따마 부처님의 인식론 속에는
그 어디, 그 어느 순간에도 나타날 여지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본론_2 : 불교 인식론' 끝)

(2013.9.14) 

[이전] [위로]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