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식式_위빳사나_길라잡이]

[서언]

수가식式_위빳사나_길라잡이는,
3년 전부터 최근까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렸던 짧은 글들을
2013년 5월 17일에 발표한 수가록修加錄의 시각에서,
내용을 좀 더 다듬고, 순서를 바꾸어서 재구성한 것이다.

필요한 경우, 수가록修加錄의 내용을 인용하였고,
수가록修加錄에 미진했던 부분을 이 글에서 보완하였다.
또한, 수가록修加錄의 1,2,3장의 주제들과 동일한 순서로 배열하여
상호간 참조와 인용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해탈에 관한 바른 순서는 1장에서,
열반에 관한 바른 목표는 2장에서,
과제에 관한 바른 자세는 3장에서 다루었다.



제1장 해탈에 관한 바른 순서


<1-1. 생애 최초의 해탈은 법다운 추론으로 성취한다.>

"이 상세한 설명이 설해졌을 때...취착이 없어져서 해탈하였다(S22:59)."

고따마 님께서 법을 설하시는 현장에서, 해탈이 성취되고 있다.
니까야의 이 묘사는, 법다운 추론으로, 생애 최초의 해탈이 성취됨을 알려주고 있다.

온처계근제연을 법답게 추론해 나가면,
4_성제를 관통하게 되고, 언어 이전의 열반을 체험하면서,
인식의 대상이 열반으로 바뀌는 해탈을 성취한다(수가록 1.14).

해탈은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다.
"해탈자란 이제 겨우, 열반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시작할 준비가 끝난 사람일 뿐이다(수가록 1.27)."

니까야에 나오는 해탈의 종류는,
일시적_해탈, 양면_해탈, 심心_해탈, 혜慧_해탈 등이 있다.

수가록修加錄에서, 재再정의한 해탈은,
'열반의 증명과 체험이 실현되는 4_성제 관통'으로 국한시켰다(수가록 1.1).


<1-2. 암송 없이는 법다운 추론도 없다.>

2300년 전에 출판된 유클리드 기하학_원론은,
어느 종교의 경전에도 뒤지지 않는, 발행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뉴턴의 명저名著 프린키피아와 다윈의 진화론도
유클리드_기하학의 체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알렉산더제국을 이어받은 프톨레마이오스 황제는, 유클리드로 부터,
청나라의 강희 황제는, 서양의 선교사들로 부터, 기하학_원론을 사사師事받았다.

이 모든 역사적 사실들이 실재實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추론 능력을 배양하는 데에 있어서, 기하학_원론보다 더 좋은 책이 없기 때문이다.

법다운 추론으로, 최초의 해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추론 능력의 배양과 더불어, 필수 경전들을 암송해야 한다.
초전법륜경(S56:11), 무아의 특징 경(S22:59), 8_정도 분석 경(S45:8), 대념처경(D22) 등이 그것이다.

또한, 온처계근제연에 관련된 상윳따니까야의 주요 내용들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수가록 1장 전체).

이러한 준비가 끝나면, 열반의 증명과 체험을 향한, 법다운 추론이, 자신도 모르게 진행된다.
미래의 어느 날, 자신만의 대념처경을 스스로 쓸 수 있게 되었다면 해탈이 완성된 것이다.


<1-3. 탐진치의 제거보다 해탈이 먼저다.>

"세존께서는 한 곁에 앉은 암바빨리 창기娼妓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D16:2)."

학교_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신분, 빈부, 미추美醜, 성품과 무관하듯이,
4_성제 관통으로 해탈을 성취하는 일도 그것들과 무관하다.

흔히들, '탐진치_3_독毒을 없애야 해탈한다'라고 말한다.
틀렸다! 그와는 반대로, 해탈함으로써 탐진치_3_독毒이 사라진다.

탐진치_3_독毒의 제거가, 해탈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해탈의 성과成果물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고따마 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물론 고따마님 재세시에도, 여러가지 수행법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당시 수행의 목표는, 가장 낮은 단계가 욕계의 선禪이었고,
가장 높은 단계라고 해 봐야, 비상비비상처천天의 세간_존재인 천신이였다.
여러가지 수행법들을 관통하신 고따마 님의 결론은,
이러한 수행법들로는, 어느 누구도 세상과 다투지않는 완벽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였다.

2600여 년 전 고따마님은, 수행방법에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온처계근제연을 공부하고, 법다운 추론으로, 열반을 증명하고 체험하는 해탈이 바로 그것이다(수가록 1장 전체).

학교_교육과 달리, 4_성제 관통으로 해탈을 성취하면,
3_독, 5_장애, 10_족쇄가 사라짐은 물론, 성품까지 좋아진다.
더 나아가, 열반으로 들어가게 되면, 세상 일을 함에 있어서도, 걸림이 없게 된다(수가록 2.20).


<1-4. 사띠는 해탈을 의지한다.>

"이들 다섯 가지 기능(안이비설신)은 마노mano를 의지한다...
마노mano는 무엇을 의지합니까?...
마노mano는 사띠sati를 의지한다...
사띠sati는 무엇을 의지합니까?...
사띠sati는 해탈을 의지한다(S48:42)."

해탈 이전에, 바른_사띠sati는 불가능하다.

4_무량심(자비희사)의 예例로써, 이 실상實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4_무량심은, 성자들만이 아니라 중생들도 실천할 수는 있지만,
중생들의 4_무량심이 성자들의 그것과 같지는 않다.
외양은 비슷할지는 몰라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

같은 이치로, 바른_사띠sati는 해탈 이후에나 가능하다.
해탈 이전의 사띠sati는 바른_사띠sati가 아니다.
중생들은, 바른_사띠sati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명지明知대신 무명無明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1-5. 바른_삼매보다 해탈이 먼저다.>

"바른_삼매가 없을 때...여실지견은 조건을 상실해 버린다.
여실지견이 없을 때...염오이욕은 조건을 상실해 버린다.
염오이욕이 없을 때...해탈지견은 조건을 상실해 버린다(A5:24)."

보통의 삼매는, 임의의 대상에 대한 집중이다.
하지만, 8_정도의 바른_삼매는, 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삼매이므로,
바른_삼매는, 인식의 대상이 열반으로 바뀌는 해탈 이후에나 가능하다.

수행의 성취 단계를 바른 순서대로 나열하면,
해탈(4성제 관통 및 열반의 증명과 체험), 바른_사띠, 바른_삼매, 여실지견如實知見, 염오이욕, 해탈지견이다.

필자의 체험에 의하면,
해탈과 염오이욕은 거의 동시同時적이었지만,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해탈이 먼저였다.
필자의 체험은, 위에 인용된 고따마 님의 말씀과도 부합한다.



제2장 열반에 관한 바른 목표


<2-1. 출세간은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아니다.>

"신들이나 인간들이 여기서나 거기서나 천상서나 그 모든 거처에서나
그를 찾아보지만 발견하지 못하도다(S1:34)."

천신을 포함한 중생들이 자신들의 눈앞에 계시는, 고따마 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니까야에 이렇게 표현된 이유를 밝혀 본다.

가장 높은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처천天의 천신들도, 세간_존재인 중생이다.
그 이하의 색계, 욕계의 천신들과 인간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욕계, 색계, 무색계는, 감관_세상 즉, 세간(lokiya)이다.
그곳에 사는 존재들은 감각기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감관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세간_존재들이다.

고따마 님께서 머물고 계셨던 곳은,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아닌 감관 밖 출세간이었기 때문에,
세간에 머물고 있는 천신들을 포함한 중생들은,
고따마 님을 발견할 수 없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감관 밖 세상인, 출세간(lokuttara)은 욕계, 색계, 무색계 어느 곳에나 있다.
인간들이 해탈열반을 통해서 욕계의 출세간으로 들어가듯이,
천신들도 해탈열반을 통해서 각자의 욕계, 색계, 무색계의 출세간으로 들어간다.


<2-2. 도道와 과果는 동시同時적이면서 이시異時적이다.>

일반적으로 니까야의 도道(막가magga)는, 4쌍8배의 출세간_도道를 뜻한다.
하지만 출세간_도道가 아닌 다른 것들도, 종종 '도道'라고 표기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8정도道(빠띠빠다patipada)의 '도道'와 중국 고전에서의 '도道' 등이 그러하다.

수가록修加錄에서는,
감관 밖 세상인 니까야의 출세간(lokuttara)과 중국 고전에서의 '도道'를, 진짜_세상이라는 말로 대신하여,
'도道'의 어휘상 혼돈을 피하면서, 많은 내용을 담고자 하였다(수가록 2.5).

"일곱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어떤 사람은 한번 물에 빠져서는 계속 빠져있다.
어떤 사람은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빠져버린다.
어떤 사람은 위로 솟아올라서 머물러 있다.
어떤 사람은 위로 솟아올라서 관찰하고 굽어본다.
어떤 사람은 위로 솟아올라서 건너간다.
어떤 사람은 위로 솟아올라서 튼튼한 발판을 얻는다.
어떤 사람은 위로 솟아올라서 물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하여 맨땅에 서있는 바라문이다(A7:15)".

해탈 후에는, 명지明知로써 진짜_세상(출세간)을 인지할 수는 있지만,
한 번의 인식과정에서, 한 찰나만 출세간_마음이 작동하는 가장 낮은 단계부터,
일곱 찰나 동안 출세간_마음이 작동하는 가장 높은 단계가 있다(수가록 1.26).

진짜_세상을 인지하는 것을, 도道(막가magga)라고 하고,
진짜_세상을 만나는 것을, 과果(팔라phala)라고 한다(수가록 2장 전체).

진짜_세상을 인지하는 순간, 찰나 동안이기는 해도,
진짜_세상과의 만남도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道(막가magga)와 과果(팔라phala)는 동시同時적이다.

한편, 진짜_세상과의 만남이, 끊김 없이 지속되어야만,
진짜_세상과 빈틈없이 동행하는 대순大順의 경지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최초의 도道(막가magga)의 일어남에서,
끊김 없는 과果(팔라phala)에 이르기까지는, 이시異時적이다(수가록 2장 전체).


<2-3. 진짜_세상을 만나야 고통이 사라진다>

"진짜_세상(도道)은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진짜_세상(도道)이 만약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짜_세상(도道)이 아니다(중용 1)."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종교와 종교인들이 있으며,
종교를 믿지 않은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실상實狀이 의미하는 바는,
종교란, 내가 다가서지 않으면 나와는 무관한, 선택_사항의 하나라는 것이다.

종교와 달리, 인간이나 천신이나, 죽기 전에는,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세상 속의 삶이다.
죽지 않고는,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고통이 없고 이익과 행복이 넘치는 것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이 바로, 감관_세상 밖에 있는 진짜_세상을 만나는 것이다(수가록 2.20).

근대 과학정신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대로 믿지 말라'이다.
이러한 정신이, 지동설과 미적분을 태동시켰고, 현대 과학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과학의 힘이 엄청난 이유는, 감관 밖 진짜_세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의해 정립된 미적분학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과학은, 그 옛날 성인들이나 가질 법한 능력들을, 일반인들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도덕률이 빠져버린 과학으로 인하여, 세상은 초능력_악당들이 들끓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고따마 님의 4_성제 관통을 통하여, 진짜_세상을 만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야 하는 이유이다.


<2-4. '무아無我의 특징 경'에, 무아無我는 없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自我가 아니다(S22:59)."

니까야의 어느 곳에서도 위의 정형구가,
'나의 자아自我는 없다'라는 뜻의 무아無我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고따마 님은 5온蘊의 공통된 특성으로, 무아無我를 말씀하셨을 뿐이다.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물을 좀 다오.
아난다여 목이 마르구나. 나는 물을 마셔야겠다(D16:4)."

목말라하는 내가 있는데, '나의 자아自我는 없다'라고 외치며, 목마름을 외면할 수는 없다.
고따마 님께서도 '내가 목이 마르다'라고 하셨다.

"불변하는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유신견有身見을...제거하지 않으면 견해의 구족을 실현할 수 없다(A6:89)."

유신견有身見을 버리신 고따마 님은,
당신 스스로를 10가지 명호로 부르셨다.
무아無我가 '나의 자아自我는 없다'라는 뜻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무아無我란 '나의 자아自我는 없다'라는 뜻이 아니다.

4_성제를 관통하여 해탈하면, 무아無我의 의미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열반으로 들어가면, 무아無我를 완전히 터득하게 된다.


<2-5. 해체한다고 무아無我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한 대의 자동차는 바디, 새시, 엔진 그리고 미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디, 그 자체가 자동차는 아니다.
>새시, 엔진, 미션, 그것들도 자동차는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자동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자아自我로, 나머지를 5온蘊으로 바꾸어 보자.
>색色 그 자체가 나의 자아自我는 아니다.
>수受, 상想, 행行, 식識, 그것들도 나의 자아自我는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나의 자아自我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유치한 논리 전개로, 니까야의 무아無我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되도록이면, 윤회와 무아無我를 주제로 하는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편이 좋다.
대부분 그 논쟁은, 장님들 간의 코끼리의 형상을 두고 벌이는 말다툼과 비슷하거나,
코끼리를 직접 본 눈뜬 사람이, 말로는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장님들에게 그 형상을 말로 전하려 애쓰는 형국과 비슷하다.

해탈하여 열반으로 들어가면, 이 모든 것들이 자명해지기 때문에,
논쟁에 소모되는 아까운 시간을, 해탈하여 열반으로 들어가는 수행에 사용해야 한다.



제3장 과제에 관한 바른 자세


<3-1. 부처는 고따마 님 한 분 뿐이다.>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도道를 일어나게 한 사람이고,
설해지지 않은 도道를 설한 사람이고...도道를 발견한 사람이다 ...
이것이 나의 차이점이고, 특별한 점이고, 다른 점이다(S22:58)."

'부처'라는 말이 갖는 특별한 뜻은, '최초' 또는 '처음'이다.
이는, 특허권, 저작권분야에서의 '최초 개발자' 또는 '최초_저작자'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니까야에 의하면, 오직 고따마 님만이 부처가 될 자격이 있다.

수학사史에 유명한 사례가 있다.
공식적인 미적분의 창시자는 영국의 뉴턴이다.
뉴턴이 먼저 미적분을 창시한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독일의 라이프니츠는,
혼자만의 각고의 노력 끝에, 뉴턴보다 조금 늦게 미적분 논문을 세상에 발표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미적분의 창시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우주 물리학에 의하면, 수십억 년 후에는, 태양의 팽창과 대폭발에 의해서,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마지막 날까지, 부처는 고따마님 한 분 뿐이다.


<3-2. 부처님 10대 명호는 없다.>

"그대는 다음과 같이,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분은 응공이시며, 정등각...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
조어장부...천인사...부처...세존이시다(A11:12)."

고따마 님께서 사용하셨던 '여래'의 의미는 '나'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들 10가지 명호를 여래_10호라고 부른다.

하지만, 니까야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세력들은
이른바, 대승_경전을 창작하면서, 신격화된 허구의 대승_부처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여래_10호의 여래와 부처를 맞바꾸어서, 부처님 10대 명호로 변조하였다.

대승_경전의 일부를 차용한 선_불교는,
한술 더 떠서, 선_경전의 창작과 조사祖師라는 것을 만들었다.
28명의 인도인人 조사祖師를 임의로 선정하고,
28번째 인도인人 조사祖師로 선정된 달마를, 중국의 1대代 조사祖師로 삼아서,
선_불교의 창시자 혜능을 중국의 6대代 조사祖師로 만들었던 것이다.

고따마 님의 가르침을 담은 니까야 속에는, 부처님 10대 명호는 물론, 조사祖師도 없다.


<3-3. 불교라는 이름을 가진 3가지 다른 종교가 있다.>

그리스_정교회, 로마_가톨릭 그리고 개신교가 서로를 이단이라고 부르기는 해도,
그들의 경전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대승_불교, 선_불교 그리고 상좌_불교는,
반야경, 6조祖단경, 니까야라는 각자의 경전이 따로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크게 다르다.
게다가 각각의 경을 논하는 논서論書 또한 각자 따로 가지고 있다.

예수교와 마호멧교가 각기 다른 경전을 가진, 전혀 다른 종교이듯이,
이들 불교들도 사실상 전혀 다른 종교인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종교를,
고따마_교, 용수_교, 혜능_교로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서로의 종교가 다르면, 종교에 대한 대화를 삼가는 것이 예의이다.
종종, 싸움으로 끝나고 마는 이들 불교 간의 논쟁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3-4.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했다고...스스로 천명하였다(S56:11)".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신 고따마 님께서,
중생들이 해탈열반에 이를 수 있도록 설說하신
가르침 또한 '위없는 가르침'이 분명하다.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안 것들 가운데 내가 가르치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러면 나는 왜 그것들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그것들은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S56:31)."

고따마 님은, 해탈열반에 관한, 필요한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종횡으로 엮어서, 한마디도 멸실되지 않도록 전하고 있는 것이 니까야이다.  
어느 누가, 니까야에 한 자字라도 추가한다면 오점이 될 뿐이다.

대승_불교와 선_불교의 내용은,
고따마 님께서 일부러 가르치지 않은 내용들임에 틀림없다.

해탈열반에 관한 한, 니까야의 내용은 완벽하다.



[끝맺음]

"밧차여, 나의 제자로...다섯 가지의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태어나, 거기서 열반에 들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재가의...신도가...오백 명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많다(M73).”

니까야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아닌 진짜_세상(출세간)에 들어간 재가자가,
수없이 많다고 전하고 있지만, 그들의 세상 속 삶의 모습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지는 않다.
어쨌든 출가를 하지 않은 재가자들도, 해탈을 성취하고 열반으로 들어갈 수 있음은 분명하다.

오늘날 한국에 소개된 위빳사나_수행법들은,
쉐우민_계열, 마하시_계열, 고엔까_계열 등, 크게 3가지가 있다.
필자의 수행 체험은, 그 어느 계열에도 속한 것이 아니므로,
수가식_위빳사나라고 이름을 지었다.

부디, 보다 많은 해탈열반자들이 출현하여,
더 효과적이고 더 효율적인, 새로운 위빳사나_수행법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고대하면서,
수가식式_위빳사나_길라잡이를 마친다.(끝)

S:상윳따_니까야 A:앙굿따라_니까야 M:맛지마_니까야 D:디가_니까야 Sn:숫따니빠따
연락처 : 페이스북 soogar571, 홈페이지 www.soogar.com

(20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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