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우암님이 읽어 보시길 바라면서, 쓴 글입니다.]


때때로 올려주시는 우암님의 좋은 글들을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올리는 글은 <1부:세상> <2부:차이>로 나누었습니다.

 

<1부:세상>

아래의 질문으로 

1부의 글을 시작합니다.

 

불의의 사고로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이 된 사람에게

세상이란

있는(존재하는) 것입니까?

없는(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고따마 부처님의 말씀하신 경전 그대로를 옮긴 것은 아니지만..)

고따마 부처님의 대답은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이 된 사람에게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없다).'입니다.

(해당되는 경전은 조금 아래 쪽에 인용해 놓았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명제와 비슷하지만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은

데카르트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만물_일체는 마음이 만든 것이다' 또한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주장입니다.)


 

바로 이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이 된 사람에게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없다).'라는 

대답으로부터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이미 언급한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이 된 사람에게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없다)'라는 내용에 해당하는

고따마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관련된 경의 해당 부분을 이곳에 먼저 인용합니다.

 

<바셋타의 경(M98)>

세상은 업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사람들도 업으로 인해서 존재한다.

 

<꿰뚫음 경(A6:63)>

"비구들이여, 의도 이라고 나는 말하노니

의도한 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짓는다."

 

<꿰뚫음 경(A6:63)>의 내용을 수용하여

<바셋타의 경(M98)>을 다시 옮겨 적어 보겠습니다.

 

세상 (의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사람들도 (의도/)으로 인해서 존재한다.

 

(수가)는 종종

'생각' 또는'생각의_'이라는 순수한_우리말로 바꾸어서

관계된 경들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러한 저의 '시도'까지 수용하여

<바셋타의 경(M98)>을 적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세상 (의도//생각)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며(있으며),

사람들도 (의도//생각)으로 인해서 존재한다(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암님께서 인용하신

<S12:15 깟짜나곳따 경>에서는

세상의 /무에 대한 세간의 견해들을 말씀하시다가

(고따마 부처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세상을 설명하고자)

갑자기 12_연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명으로 덮인 (의도//생각)에서 출발하여

(/명색/육입////취를 거쳐)

12_연기의 10번째 지분인 존재()에 이르러

사람들과 세상이 존재하게(있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전개된 글의 내용이 문제가 없어 보인다면

다음 글을 읽으셔도 되지만,

문제가 있다고 보이면 다음에 이어지는 글은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2부:차이>

~그러면

초등학생의 (의도//생각)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존재하게 된) 세상

어른연령의 (의도//생각)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존재하게 된) 세상

같을까요?

 

당연히 틀립니다.

 

그래서 고따마 부처님께서는

(의도//생각)에 

6가지(또는 아수라를 뺀 5가지)의 수준_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꿰뚫음 경(A6:6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들의 차이점인가?

비구들이여, 지옥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축생의 모태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아귀계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인간 세계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천상 세계에서 [과보를] 겪어야 하는 업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업들의 차이점이라 한다.

 

세간에서 가장 높은 (의도//생각)의 수준은 천신입니다.

그보다 높은

출세간의 (의도//생각)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존재하게 된) 세상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재세在世

(해탈열반의 자리)에 머물고 계셨던 고따마 부처님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살고는 있었지만)

동시대(contemporary)의 중생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반을 모른다는 의미를 포함한) 

무명을 벗어나서

(의도//생각)의 수준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해탈열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글을 마치며>

세상과 사람의 발생의 원인과 조건은 무명으로 덮인 (의도//생각)이다.’

묘사하고 있는 12_연기의 주요 구성요소는 결국 5온들 입니다.

 

이러한 5온들을

연기된 것으로 독립된 자성이 없다라고 이해해서는

(열반으로 마음을 돌리기 위한)

염오/이욕이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고따마_공空(내 것이 아니요, 내가 아니다)

또는

고따마_무아無我(내 것이 아니요, 내가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다)/으로 보아야만

(열반으로 마음을 돌리기 위한)

염오/이욕이 가능합니다.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의 결론은

언제나 해탈열반입니다.

 

초기경전_불교신자들은

고따마 부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만 따라서

자신의 길을 가면 됩니다.()

 


 

(20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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