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에 기초한 윤회와 재생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나에게는 두 가지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첫째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이른 봄날 임종을 지키지 못한 상태에서, 그 당시 47세 이시던 모친께서 나를 애타게 부르시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신 일이고, 둘째는, 11년 전 어느 이른 봄 날 갑작스럽게 뇌종양으로 쓰러진 대학 2년차 큰 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일이다. 나의 이러한 아픈 경험을 말하는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사실로 받아드리기 어려운 사례들을 말하기 위함이다.

사례 1. 나의 첫 번째 자식이었던 딸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3세 무렵인 어느 날, 아이의 엄마는 시댁에 볼일 보러 가 있었고, 집에는 나와 처조카 그리고 딸 세 명이 있었다. 그때 딸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와서 거실에 앉아있던 내 머리를 어루만지며 '아유, 내 새끼.' '아유, 내 새끼'하며 두 번을 반복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와 처조카는 깜짝 놀랐으며 그 때만 해도 불교의 ''자도 모르던 터라 '혹시 모친의 혼령이 씌운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서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그러한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는 않았다. 굳이 그 아이에게서 특별한 점을 회상한다면 자라는 과정 내내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 매우 어른스러웠다는 정도이다.

사례 2. 그런데 윤회에 대한 좀 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영상이 인터넷에 있다. (루이지아나 주에 사는 미국인 소년)

https://www.youtube.com/watch?v=54FluHgwFXc&feature=youtu.be

남방 상좌부의 아비담마 상가하 또는 청정도론에 나오는 3 가지 정상적인 죽음 중에서 정신적이 수명이 아직 남았는데 육체적인 수명이 끝나서 죽은 경우에는 같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 전생에 다하지 못한 정신적인 수명만큼을 산다고 한다. 또한 이 책들에 의하면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마지막 속행_과정은 ',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 등의 3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대상으로 삼으며 이것에 의해서 다음 생이 정해진다고 한다.

나의 모친은 나를 애타게 부르시다 돌아가셨다고 하니 임종 시, 모친의 '업의 표상'으로써 나(수가)를 대상으로 삼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상으로 말씀드린 모든 내용들을 종합한다면, '돌아가신 모친께서 나(수가)의 딸로 윤회하여 전생에 다 쓰지 못한 정신적인 수명만큼을 살고 나서 돌아가셨다.'라고 추론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이러한 추론은 모친의 죽음과 딸의 탄생사이에는 13년의 공백이 있기 때문에 '중음'을 인정하지 않는 남방 상좌부의 이론에는 배치되는 추론처럼 보인다.(남방 상좌부에 의하면 죽는 즉시 다음 생이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란 몸을 받은 후라야 다시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13년의 공백은 업(생각-시스템)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실상 공백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의 추론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위의 두 가지 경우에서 보듯이 3세 무렵, 전생과 별개인 금생의 라는 자아의식이 생기고 나서는 전생의 기억은 금생에 더 이상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생의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 기억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포인터가 끊어진 상태이다. 그 증거는, 삼명三明을 증득하신 부처님께서 '나는 수많은 나의 전생의 이름, 신분, 생김새까지도 기억한다.'라고 하신 말씀들이다. 마하수닷사나 경(D17), 웰라마 경(A9:20), 빠쩨따나 경(A3:15), 마하고윈다 경(D19), 마카데바 왕의 경(M83), 웰라마 경(A9:20).

이상의 내용에 기초하여 윤회에 대한 결론으로 몇 가지 나의 생각들을 적어본다. (1) 윤회의 주체는 업(생각-시스템)이며 그 시작은 아무도 모른다. (2) 금생의 정신적인 수명은 업(생각-시스템)이 재생할 때 정해진다. (3) 재생된 업(생각-시스템)은 금생의 수명 동안 연기에 의해서 무수한 변화를 겪는다. (4) 그 변화된 업(생각-시스템)이 완전한 열반에 들기 전까지는 다음 생으로 또 다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다음 명제(질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자. 2500년 전 세 사람의 성인들이 출현하였다. 그들이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너 자신을 알라.(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닦아라.(공자) 너 자신에 머물라(고따마). 이들 세 사람은 하나의 동일한 업(생각-시스템)이 다른 몸을 지니고 다른 장소에 복제되어 재생한 것은 아닐까? 만약 업(생각-시스템)의 복제가 불가능하다면 현재의 지구 인구 약70억 명을 불교적으로 설명할 도리가 없다.()

.(201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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